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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1


KBS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의 역사저널 그날 1권을 구입하였다. 역사저널 그날 이란 프로그램을 잘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한번씩 볼 때마다 역사적 사건들을 여러 전문가들의 말을 통해 다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영상과 패널들의 토론을 오가는 다양한 구성을 통해 그동안 딱딱한 책으로 접해왔던 한국사를 즐겁게 알아갈 수 있었다. 1권에서는 고려말에서 조선초의 역사에 대해 다루며 우리가 잘 아는 정몽주, 정도전, 이성계, 이방원 등의 조선이란 왕조를 열었던 주역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청률로 증명된 재미, KBS 「역사저널 그날」을 책으로 만난다 2013년 가을 첫 방영을 시작한 KBS 「역사저널 그날」은 딱딱했던 역사를 토크쇼 형식으로 풀어냄으로써 역사 읽기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신선한 시도라는 찬사를 받았다. 지루하고 일방적인 지식 역사가 아니라, 웃고 떠들고 눈물짓는 이야기 역사, 사람의 살 냄새 짙은 사랑방 한담 같은 맛으로 교양 프로그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바로 그 화제의 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난다. 책에는 우리 역사 속 결정적 그날을 가볍고 유쾌한 수다로 풀어내는 프로그램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는 한편, 방송된 에피소드들을 시대순으로 배열하여 완정한 조선왕조실록 으로 재구성했다. 여기에 조선왕조실록 이나 연려실기술 등 실제 사료를 덧붙여 독자들이 역사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도록 했으며, 유물과 지도 등을 추가하여 입체적인 역사 읽기를 가능하게 했다. 또 방송 시간 때문에 잘려 나간 미방송분 가운데 특히 아까운 부분들을 수록하여 재미와 완성도를 모두 잡았다.

1장 정도전, 이성계를 만난 날
정도전과 이성계,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 정말 혁명을 모의했나 | 정도전의 상황 | 왜 이성계를 택했나 | 국민 영웅 이성계 | 이성계와의 인터뷰 | 칼을 만난 붓 | 정도전과 정몽주의 우정 | 신진 사대부의 등장 | 정도전의 민본 사상 | 위화도 회군의 이유 | 위화도 회군, 옳은 판단이었나? | 위화도 회군과 정도전 | 정도전의 개혁 정책 | 정도전과 정몽주의 대립 | 정도전, 조선을 설계하다 | 백성 입장에서 본 고려와 조선의 차이 | 정도전과 이성계에 대한 한 줄 평

2장 이성계, 500년 왕조의 서막을 열던 날
옥새를 사양한 이성계 |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퍼포먼스? | 조선의 건국일은 언제인가 | 왜 ‘조선’이라고 했나 | 이성계가 천도를 고집한 이유 | 한양이냐, 무악이냐? | 한양이 좋았던 점 3가지 | 유교적 이상이 구현된 계획도시 | 경복궁의 쓰임새와 숨은 뜻 | 강녕전엔 왜 용마루가 없을까? | 경복궁을 작게 지은 뜻 | 정도전이 설계한 조선의 정치 시스템 | 정도전을 압송하라! | 외교문서의 무엇이 문제였을까 | 문제는 요동 정벌? | 이성계와 정도전이 세우고자 했던 조선은 어떤 나라였을까

3장 왕권인가 신권인가, 왕자의 난
‘왕자의 난’은 어떤 사건인가 | 정도전은 정말 반역을 시도했나 | 이방원과의 인터뷰 | 태조, 막내를 세자로 삼다 | 세자 책봉의 배후, 신덕왕후 | 정도전은 왜 동의했을까 | 사건의 도화선, 사병 혁파 | 이성계가 아프면, 이방원이 움직인다? | 이방원이 곧바로 왕이 되지 않은 이유 | 꼭두각시 임금 정종 | 굵은 기둥을 세우십시오 | 태조와 태종은 화해했을까 | 아버지와 아들의 숙명 | 태종에 대한 오늘의 평가 | 정도전이 꿈꿨던 조선은 사라졌나 | 외척을 제거해 왕권을 지키다 | 이방원과 정도전이 힘을 모았더라면? | 이방원에 대한 한 줄 평

4장 세자 양녕, 폐위된 날
세자가 폐위된 이유 | 적장자 계승의 기원 | 적장자 왕은 모두 몇 명? | 세자의 하루 | 세계적 수준이었던 조선의 왕들 | 공부하기 싫어했던 양녕대군 | 폐위를 부른 양녕의 스캔들 | 양녕과 어리의 사랑, 결말은? | 아들을 폐위하게 된 태종의 심경 | 양녕대군 세자 양보설의 진실 | 충녕대군은 어땠을까? | 폐위된 후의 삶 | 양녕대군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5장 조선, 왜구와의 전쟁을 선포하다: 대마도 정벌
대마도, 왜 정벌해야 했나 | 건국 초기, 대대적인 정벌을 한 이유 | 제비뽑기 팀 선발 | 왜구의 정체 | 조선의 햇볕 정책 | 조선에 재팬 타운이 있었다? | 조선의 외교관, 이예 | 조선 시대에 대마도에 간다는 것 | 외교관으로서 이예의 강점 | 왜 코끼리를 보내왔을까 | 살인죄를 저지를 코끼리 | 조선 외교관들의 필독서 해동제국기 | 옛날 외교관들은 어떻게 소통했을까 | 신숙주가 일본에 관해 남긴 메시지 | 꼬여만 가는 한일 관계 | 일본의 혐한 분위기 | 역사가 가르쳐 주는 한일 관계의 교훈 | 세종 시대의 외교는 무엇이었나

6장 세종, 집현전을 열던 날
세종이 집현전을 부활시킨 이유 | 집현전 학사들은 모두 수재였다? | 특별한 곳에 있었던 집현전 | 집현전의 복리 후생 제도 | 엘리트들도 감복시킨 세종의 리더십 | 장인 죽은 다음 날 연회에 참석한 세종 | 세종이 심온 사건을 재수사하지 않은 이유 | 소헌왕후의 심정 | 세종의 인재 경영: 황희의 경우 | 인재들을 모으는 세종의 비법, 경연 | 희한한 경연 주제들 | 지금 봐도 놀라운 경연 분위기 | 부려 먹기의 달인, 세종 | MBTI로 알아보는 세종의 성격 | 세종이 지금 다시 태어난다면? | 오늘날의 시계보다 정확한 조선 시대 해시계 | 세종 시기 유독 과학이 발달한 이유 | 세종 시대 과학은 세계 몇 위? | 최만리가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한 까닭 | 최만리는 처벌받았나? | 세종 시대의 인재들 | 세종은 누구인가

7장 1430년 조선, 첫 국민투표 하던 날
한국사 최초의 국민투표 | 어떤 방식으로 실시했나 | 기존 세법의 문제 | 당시 세금은 어느 정도의 부담이었나 | 1430년도 전국 투표의 결과는? | 지역별계층별로 의견 차를 보인 이유 | 민감한 개혁안, 어떻게 동의를 이끌어 냈나 | 성군에게 닥친 시련, 가뭄 | 역법 제작 비밀 프로젝트 | 칠정산내외편 의 놀라운 정확성 | 현장에서 얻은 지혜, 농사직설 | 세종대왕의 하루 | 세종의 북방 정책 | 소외층 배려 정책 | 노비와 남편에게도 출산휴가 | 다산 왕 세종 | 큰딸을 잃다 | 향약집성방 으로 본 의학 상식 | 만 원 지폐에 담긴 비밀 |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국제적인 상이 있다? |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그치지 아니하나니

특별기획 - 창덕궁 가는 날
태종, 창덕궁을 짓다 | 창덕궁은 누가 지었나 | 건물 이름들의 유래 | 왕들이 가장 사랑한 궁궐, 창덕궁 | 왕의 즉위식이 인정문 앞에서 치러진 이유 | 내시들이 체력 훈련을 받았다? | 크게 창조하는 곳, 대조전 | 왕과 왕비의 동침은 어디서 이뤄지나? | 왕의 화장실을 찾아서 | 정조가 지은 규장각 | 왕이 직접 농사짓던 후원 | 과거 시험을 보던 춘당대 | 로맨티스트 헌종이 지어 준 석복헌 | 근대 왕실사가 살아 숨 쉬는 낙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