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매력이 있는 시집이었다. 여러 색의 유리 조각을 꿰어 맞춰놓은 것처럼 불연속적인 하나의 판이 각각의 시로 표현된 느낌의 시들도 있었고 동화적인 느낌을 주는 시들도 있었다. 그중에서 꼽아놓은 시는 [입술 모르게] 와 [얼룩말 시나리오] 그리고 [목요일마다 신선한 달걀이 배달되고]였다. 그려지는 느낌을 주는 시들이 읽기에 편해서 특히 [목요일마다 신선한 달걀이 배달되고]가 읽기 좋았던 것 같다. [입술 모르게]같은 경우는 첫번째 연 내용이 가장 와닿았고.
[ 입술 모르게
건포도처럼 말라버리지 않으려면
뭘 좀 먹어야겠지요
쪼글쪼글 웃으면서
버스를 삼켜버릴 식욕을 배웁니다
후략 ]
하는 부분이 있는데, 지금 체중조절 중이라 그런지 몇번이나 곱씹어 읽은 구절이다. 현실은 먹지 않아도 거봉과 같이 크고 단단히 부푼 몸을 자랑하고 있지만 평소 먹던 양에 비해 식이를 조절하고 있다보면 글쎄, 저렇게 조그라드는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 생활 감상.
재미있는 것은, [중국인의 책상] 이라는 시에서 [종이 상자를 물에 불려서/쪽쪽 찢어서/만두 속을 채운다면 감쪽같겠지/백번째의 내가 첫번째의 무서운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연이 나오는데 예전에 중국산 종이만두 파동이 있었던 사건이 고스란히 떠오른다는 것이다. 떠올랐을 때는 그저 웃고 지나갔는데 여기에 쓰려니 한번 검색을 해봐야 했는데, 2007년 쯤의 일인 것 같다. 진짜다 조작이다 하는 의견도 분분한데 이미 잊혀진 그러나 언제든 회자될 준비가 된 희대의 사건이겠다. 분유니 뭐니 하는 것들도 더불어 나오기 시작했던 계기가 된 사건이었으니까. 시를 읽다 문득, 가십이 떠오르다니. 그 두 간극을 크게 봤는데 기실 그렇지만도 않은가보다. 사실 그래야 하는 것이 또 맞고.
독특한 느낌의 시가 많았다. 시는 언제나 다양하고 낯설다. 그래서 이러한 평이 어울리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2004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온 이근화 시인이 투명하고 절제된 파격의 언어들의 시집 칸트의 동물원 을 세상에 내 놓은지 3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 조용하고 경쾌한 목소리로, 그나마 있던 옷마저 벗어버리고 무엇보다 투명해지려는 노력으로, 그녀의 시 언어는 ‘혁명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다정하고 달콤한 목소리 사이에서 피할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존재의 부조리함, 혹은 더할 수 없이 경쾌하고 투명한 공포의 아름다움. 이 무섭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요약할 만한 어떤 언어도 찾지 못했다면, 그건 시인의 책임도, 당신의 책임도 아니다. 비인칭의 공간 속으로 가볍게 흩어져버린 언어에서 우리의 감정은 이상한 방식의 ‘진화’를 경험한다.
우리들의 진화 는 요약의 불가능함으로부터 시작된 시집이다. 우리 라는 모호한 경계와 무한히 확장하려는 언어의 자유를 꿈꾸는 일. 이로써 불가능한 글쓰기에 가닿으려는, 일견 무모해 보이기까지한 시도. 이 시도의 결과물은 독자의 손 위로 넘어갔다. 시집 우리들의 진화 는 뚜렷이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지금, 투명성을 통해, 우리들 과 ‘우리들의 감정과 상상력’을 진화시키는 ‘시집’이며, 새로운 감각으로 답답하기 만한 ‘지금’에 서늘한 통풍구가 되어줄 것이다.
- 시인의 말
제1부
엔진
소울 메이트
마로니에
고양이 불필요
우리들의 진화
톰이여
입술 모르게
목요일마다 신선한 달걀이 배달되고
중국인의 책상
얼룩말 시나리오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우리들은 자란다
종의 기원
소나티네
뼈
오늘은
大원수 무찌르자 포장마차
원피스
우아하게 살고 싶어
내가 당신의 가족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제2부
금자씨의 권총
마른 사람
뚝섬유원지
청평 가는 법
우리의 우정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미래형 지폐 제조기
내 인생의 0.5
다 썩은 배 반쪽
f
주말여행 계획서
검은 무지개
송곳니
물고기의 중심
박춘근 씨 밑에서 일하기
손만원 씨와 수퍼 옥수수
식물들의 시간
도약하는 사과
옛날 버터 케
버스여 안녕
옥수수 밭의 전화
제3부
코
꿀이라고 생각되는 맛
청바지를 입어야 할 것
펭귄의 독서
단추
바나나 익스트림
새우의 맛
고백의 일요일
피에로
크리스마스 캐럴
우리는 같은 이름으로
고방 카스텔라
출발 오 분 전
하마
강물처럼
그림자 수집
그림자
삼겹살 수사
괴물들
빨간 토끼
- 해설 | 진화하는 우리들의, 명랑하고 모호한 감정들 · 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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